위대한 반스키

  사람들은 나를 ‘그레이트 반스키(The Great Bansky)'라 부른다. 나는 거리, 극장 등을 오가며 그래피티와 설치미술 작업을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예술가이다. 나의 오피니언은 보통 정치, 환경, 인권, 동물 보호의 범주에 머무르는데, 이들에 관한 의로운 분노가 담긴 미술작업이나 문구는 현재 영국 런던 거리와 건물에 수백 건이 전시되어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작업을 했냐고? 런던 시와 건물주의 허가를 어떻게 그렇게 잘 받아 냈냐고? 그들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었다. 왜냐! 몰래한 작업이니까! 

나의 섬세하고도 개성 넘치는 작업은 보통 밤에, 그리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이루어진다. 장소 섭외, 도안 그리고 실행연습까지 한 프로젝트 당 3달 정도 단단히 준비하기 때문에 발각당하거나 실수를 남기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 이런 일을 당한 건물주들은 당장 다음 날로 페인트를 준비해 내 작품을 망가뜨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작품의 콜렉션이 수십 건에서 수백 건으로 증가한 오늘날,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며 내 작품들은 철거의 대상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수직 신분 상승되었다. 작은 성공에 도취한 나는 몇 개의 더 실험적인 작업들, 예를 들면 건물과 문화재에 약간의 훼손을 가져왔지만 정치적 메시지의 전달력이 강했던 작업들을 감행했는데 찬반양론이 있기는 했지만 멘트나 그림의 명석함과 재치에 힘입어 포스트모던 반달리즘 예술이라는 내·외신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국제적인 ‘넘사벽(CDNW: Can Do No Wrong)'의 반열에 이른 것이다. 

나에 관한 매력적인 사실은 아무도 내 얼굴과 정체를 모른다는 데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바로 이 사실이 내 목을 조여 왔다. 

어느 날 ‘위대한 반스키’의 작업처럼 혹은 도둑처럼, 내 마음에 불안하고 허무한 감정이 찾아왔다. 도망, 위장,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의 연속인 삶, 이 때문에 겉도는 인간관계에 꽤나 지쳐있었나 보다. 외모도 평범한데 돈 자랑이나 직업자랑을 할 수 없으니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거울을 보니 창백한 뱀파이어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계속된 야근 때문에 햇빛을 본적이 언제였더라? 건강검진을 해보니 심각한 비타민 D부족에 빈혈이 있다하고, 또 얼마 전 가슴 두근거림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았다. 

갈수록 빈약해지는 내 몸과 마음을 대신해 나는 Zone 4 크리스탈 팔래스에 위치한 내 작업실을 더욱 강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만큼은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었다. 페르시아 양탄자가 깔린 마루에, 밀라노에서 직접 공수한 edra 소파에 앉아, 어떤 예쁜 여자 손이 섬세하게 세공된 유리컵에 물 좋다는 벨기에에서 가져온 천연 탄산수를 따라 마셨다. 그리고 나의 작업실 안에서는 항상 CCP의 빨간 홍창구두에 호랑이 가죽 가운을 입고 다녔다. 동물보호를 외치는 위대한 밴스키는 허울 좋은 포장일 뿐, 진실의 나는 이 가운이 주는 희소성과 우월감에 빠져있었다. 이렇게 보니, 내가 직접 디자인한 소박한 작업 테이블 만이 자유롭고 싶은 내 진심을 담은 듯하다. 나의 A Table은 무게감 있는 나무 상판을 두 개의 A형 다리 구조물로 지탱하고 있는 형태인데, 상판의 무게가 하단과의 접착제 역할을 하고 이를 들어 올리면 완전히 분리가 되는 디자인이다. 완벽한 작업테이블, 누구나 상상하는 작업대의 원형. 나는 오늘 언제든 원하는 순간에 즉시 자유로이 떠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투영된 책상 귀퉁이에 붓으로 ‘The Great Bansky’라는 이름을 써넣었다. 

오늘은 어김없는 3달간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최종 작업을 실행하는 D-day이다. 목적지는 BBT(British Ballet Theatre)이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 창단된 지 80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수석 발레리나가 탄생했는데 올해 돌연 아무 이유 없이 그녀가 해고되며 큰 사회적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BBT의 오리무중 지조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용극장에 거대한 흑조를 그려 넣을 생각이다. 

작업은 계획한 대로 수행되었고 결과물도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듯 보였다. 모든 도구들을 정리하고 랜턴을 끄고 극장의 왔던 문으로 걸어가 밀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문이 안 열리는 것이다. 뭔가 착각을 했을까 하고 다시 밀었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아무리 힘주어 밀어 보아도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밀려오고 불안한 감정이 몰려왔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손과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냥 공황장애가 또 몰려 온 것일까? 숨이 막히는 듯하다. 한참을 웅크린 채 않아 눈물을 흘리다 고개를 들게 되었는데, 랜턴 불에 익숙해졌던 내 눈이 어두움에 다시 암적응하며 문에 새겨진 희미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당기시오 (Pull)' 

F**k 빌어먹을 오래된 극장 문을 당기고 나오니 벌써 어둠이 물러가고 새벽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짐을 차에 실어 둔 채 오늘은 좀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클라팜정션 부근 기차길엔 아침의 햇살이 빛나고 뼈를 시리게 한 전날의 공포는 따스함으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햇볕을 본적이 얼마만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제는 좀 더 낮에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작업실에 도착해 오늘은 바로 잠들지 않고 작업방으로 이동했다. 호피 가운도 입지 않고 빨간구두 대신 편안한 슬리퍼를 신은 채 작업테이블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테이블 색깔 한번 바꾸어 볼까? 그 자리에서 원래는 진초록이 발린 A Table 상판을 들어 뒤집었다. 

레드(Red)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 중 하나로 산업화 이전엔 남성, 황제 등 온갖 우월한 의미를 내포하던 색이었다. 나는 여기에 오늘 ‘빛’을 섞어 보려 한다. 물감에서 빛에 해당되는 화이트를 섞으니 레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핑크색이 올라왔다. 그 자리에 위엄과 권위는 사라지고 따스함이 물들었다. 그리고  A Table의 귀퉁이에 어제와는 다른 수식어가 붙은 나의 이름을 붓으로 그려 넣었다. 

‘The Grateful Bansky’ 

 

 

* 참조 : 연결고리 인문학 이야기 

1903년 12월 30일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Iroquois Theatre’ 극장 화재는 602명의 사상자를 내며 가장 큰 극장 대참사로 역사에 남았다. 완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방 설비도 미흡한 채로, 규정 인원보다 더 많은 관람객을 받은 극장 측의 안전 불감증과 더불어 대참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한 가지는 바로 ‘공포’였다. 

화재가 발생하자 실제로 비상구를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압사 당했고, 문에 도착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문을 밀기만 했는데 사실 이 극장은 문은 안쪽에서 당겨야 열리는 문이었던 것이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다른 시도를 할 틈도 없이 밀려든 인파와 공포속에서 허무하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글: 정은 작가

Identification and Creation

Object Name / A Table (2 colours both sides work table)

Classification /  Furniture

Work Type / OFFICE WARE 

Year of design / 2016 SS (1st generation) / 2016 FW (2nd generation) / 2017 SS (3rd generation)

 

Physical Descriptions

Material /  Carbonized Solid Beech / 2 colours (Green & Pink Formica)

Dimensions / A table 1800(1800 x 900 x 750mm) / A table 2200 (2200 x 1000 x 750mm)

Country / Made in Korea

 

Contexts and Rights

Produced by STILL LIFE

Designed by STILL LIFE 

written by Jungeun Jacka

Manufacturered by 101

Managed by VOY Studios

photography by Suk Jun / Taejun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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