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 (Siamese)

관계의 에덴(The Eden of Relatum)

 

태초에 아담과 이브는 투명한 관계였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브는 아담의 분신 그 자체였다. 이브는 몸만 분리되어 있을 뿐 그야말로 아담의 신체의 일부였고, 갈비는 귀소본능적으로 원주인의 뇌가 생각하는 데로 움직이며 돕는 역할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법은 입에서 귀로 전달되는 ‘음성 언어’ 이외에 최소한 3개 이상의 채널이 있었다. 눈에서 눈으로 오가는 교환, 웃음에서 웃음으로 전달되는 감정 복사, 그리고 가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뇌 속에 있는 생각들이 서로에게 저장되는 지성 복제가 그것들이었다. 

입으로 내뱉는 말은 그저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한 예의상 절차이거나 갑작스런 영감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공유해야하는 순간들일 뿐이었다. 완벽하게 투명한 사이에 놓인 두 사람에게는 어떠한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렇게 에덴의 동산에는 평온하고 즐거운 두 사람 외에는 어떤 다른 인간 관계도 필요하지 않았다. 작은 두 사람 만으로 완벽한 천국이 이루어졌다.

바로 거짓말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기 전까지 말이다.

뱀은 여호화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대답했다. “동산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했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 뱀이 말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뱀의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거짓말은 뱀의 말보다 먼저 인간의 입에서 출발했다. 바로 이브의 입에서 굴러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말라 하시며 반드시 죽을 것이라 확실히 알려 주셨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확언은 인간의 거짓말에 섞여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는 50:50 상황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여기에 뱀은 나머지 50의 양심을 지워줄 거짓말 쐐기를 박는다. ‘너희가 결코 100% 죽지 않을 것이다’. 이에 인류 최초의 악이 이루어 진다.

이 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아시는 대로, 두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고 노화, 출산, 고된 노동 등을 벌로 받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전히 투명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분리’되어 버렸다. 아담의 갈비는 주인으로부터 완벽히 단절되어 자신의 머리를 가지게 되었다. 적어도 3개 이상이던 그들의 대화 채널은 대폭 축소되어 이제는 서로의 입과 귀의 음성언어로 확인하는 방법이 아니면 본심을 알 수 없는 오늘의 인류와 별 반 다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 인류는 관계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가족과 주변인들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두 사람만으로 충분했던 천국은 사라졌고 아픈 분리를 경험한 인간은 정체성을 입혀 줄 문명의 발전과 더 나은 짝짓기 선택을 향하여 쉼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이제 핵무기의 개발로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살상전은 종언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에서 새로운 문명의 발전과 짝짓기 선택의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기껏해야 수십명에서 150명 정도가 보통이라 했던 인간관계는 이제 SNS를 통해 수천명씩 너끈히 연을 맺는 것 까지 팽창되었다. ‘공감’과 ‘소통’의 시대가 도래했고 인류는 두 가지에 유연하도록 진화했다는 사회학자들의 말과는 무관하게 대형 서점에는 인간관계 고민에 관한 책들이 연일 베스트셀러이다. 이렇게 병적으로 몰두하게 된 ‘인간관계의 중요성’ 또한 에덴 동산에서 쫏겨나면서 받은 저주일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매일 밤 이 신화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꿈꾼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는 무신론자이다. 성경과 신학은 오로지 오류를 입증하기 위해 공부했을 뿐, 나는 종교와는 무관하고 종교적이지도 않다. 또한, 나는 과학자이다. 모든 일은 물질적 증거가 있기 전에는 그저 ‘모른다’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는 근대 과학의 믿음을 계승하고 있다. 나는 매일 밤 꾸는 꿈이 인간 DNA에 축적된 최초의 인간에 관한 기억인지 아니면 읽은 책에서 떠오른 망상인지 그저 ‘모른다’. 단 한가지, 만약 꿈이라는 것이 인간 무의식까지 내려가는 기억과 감정의 무질서한 혼합체라는 가설을 따른다면 나의 무의식와 의식의 일부 어딘가에 꿈의 내용과 연결성을 가지는 개인사가 있고 여기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이브의 이야기는 어딘가 나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사실 나는 샴쌍둥이였다. 특히 갈비가 붙어 있었던 쌍생아였다. 나는 어린 나이에 힘겨운 분리 수술을 받았고 분리 수술을 받는 도중 쌍둥이 아이작이 죽어 버리는 바람에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그저 빨리 잊어버리기로 선택했다. 다행히 가족 친척들 누구도 아이작에 대한 기억을 함부로 꺼내 놓아 나의 결정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없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애초에 분리 수술을 받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쪽 또한 아이작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 혼자 살아남게 된 것에 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혹시 그렇게 나를 떠나고자 했던 아이작이 뭐 할 말이라도 남았던 것일까? 감성적이고 혼자 고결한척 거짓말도 못하던 아이작 녀석이 성경의 이야기를 업고 와서 나에게 무언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어쩌면 진짜 이유는 이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꿈은 나의 연인 이브와의 사랑이 시작된 즈음부터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녀와의 관계가 소원해 졌기 때문일까?

나의 이브는 사랑스러운 여자이다. 그녀의 눈은 자신의 생각을 비추는 거울과 같았다. 연구실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나오는 말은 모두 ‘가설’에 불과하다. 어느 때 부터인가 나는 그들의 말을 근대 과학 이론을 대하 듯 대하기 시작했다. 물질적 증거가 나타나기까지 나는 그들의 말을 오로지 ‘가설’로만 받아들이며 그렇지 못한 말들에 관해 ‘모른다’는 태그를 붙여 분리해 버렸다. 나의 말도 진리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많은 말들은 남의 말들과 같은 ‘가설’ 카테고리에 분류해두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가장 중요한 증인으로써 이미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는 말들의 명백한 ‘거짓말’ 카테고리로 분류해 버렸다. 그러나 이브는 그녀의 눈빛이, 표정이,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사랑스러운 몸짓이 그녀의 말을 증빙해주는 참고자료이자 주석과도 같았다. 

그녀에겐 거짓이 없었다. 아니 그녀는 거짓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어떠한 말을 할 때면 그 눈은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꼭 쥔 손의 떨림은 그녀의 말이 마음과 막바로 연결되어 그 말의 중요도 대로 감정도 함께 고조됨을 증거했다. 한 단어 한 단어 중요하게 내 뱉는 말들을 들으려는 청중들의 태도 또한 진지해 진다. 그렇게 그녀의 진심은 나를 흔들고 그녀의 작은 몸 몇 백배에 해당하는 공간을 바꾸어 버리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러한 한 사람을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 바로 아이작이었다. 나는 그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안다. 그는 거짓을 말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짜증나는 사실은 내가 거짓말을 할 때면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짓이 없는 그와 다르게 나는 나의 이득을 위해 때론 거짓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느껴졌던 아이작의 침묵에 초라함을 느끼곤 했었다. 지금 그가 없는 마당에 내가 거짓말을 해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은 거짓말을 했을 때 더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초라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초라하지 않은 사람으로 아이작 이후의 세월을 이겼다. 세월과 더불어 나의 거짓말도 대담함과 빈도가 성장했다. 그런데 다시 갑자기 극한 초라함 앞에 멈추게 되었다. 나의 작은 거짓말이 이브에게 들통났던 것이다. 그녀의 침묵은 정말로 오랫만에 말보다 더 크고 많은 말을 건네 주었다. 나 또한 그 침묵 앞에 침묵했다. 거짓말로 잘 굴러가던 나의 세상을 잠시 멈추고 진실 앞에 나아가 다시 인생의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는 언어의 길을 걸어 본다.

‘미안해, 한번만 기회를 줘.’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고 이브는 나의 수치를 덮어줄 가죽 자켓을 사주었다.

우리 둘이 다시 하나 되던 밤에 나는 다시 꿈을 꾸었다. 우리가 분리 수술에 관해 어른들끼리 하는 대화를 엿듣던 밤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둘 중 하나는 죽을 지도 모르니 우리 절대 이야기 하지 말자는 둥 한 명이라도 정상인으로 키워야 되지 않냐는 둥 당시 어린 우리로써는 감당 할 수 없었던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들 뿐이었다. 나는 마음으로 아이작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 수술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우리 중 한명이 죽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겁을 집어 먹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이 분리된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또한 겁을 내고 있었다. 내가 아이작의 생각을 언어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아이작도 나의 생각을 언어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일부러 아이작이 들으라고 내 마음에다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니가 싫어! 너 때문에 어른들에게 거짓말도 못하잖아! 이렇게 살다가는 싫어서 죽을 것 같다!’ 바로 그 다음 날 아이작은 어른들 앞에 나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아담이 싫어요! 이 거짓말쟁이 녀석을 나 한테서 떼네어 주세요.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은 문제의 에덴 동산으로 이동했다.

바로 창세기로 다시 온 것이다. 하나님이 다시 인간에게 경고하는 장면이었다.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먹지말아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런데 그말을 듣는 사람이 좀 모자라 보였다. 아담 홀로 그 명령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관한 명령을 들은 사람은 아담 혼자였던 것이다. 그 때 이브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바로 이브에게 ‘반드시 죽으리라’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바꾸어 말한 사람이 아담이 된다는 뜻으로 인류 최초의 거짓말장이는 아담이었다는 증거 장면인 것이다. 투명한 관계에서 아담을 투영하던 이브는 아담의 생각의 생각뿐만 아니라 죄까지도 공유하게 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나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미안해 아이작, 미안해 아이작! 그 수술을 애초에 원했던 사람은 니가 아니라 나였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해 미안해. 내 마음의 욕망이 니 입을 통해 나오게 만들어서 미안해. 내가 결국 너를 죽게 만들어서 미안해.’ ‘나의 거짓이 너를 죽게 만들었어.’

나는 철저히 온전하지 못한 인간이다. 더구나 세상에는 나와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마음의 장애로 가득한 인간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최소한 수 십년 살아온 나는 잘 알고 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SNS를 통해 수백 수천명과 소통하고는 있지만, 본심은 이런 병든 세상을 조금이나마 진심으로 대하거나 친절한 인간으로 살아 줄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 한번 과학자의 태도로 돌아와 나는 ‘모른다’. 이부분에서 아직까지 판단 유보 상태이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내가 아이작을 알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아는 나의 정직한 이브를 실패 시켜서는 안된다. 나는 나의 이브를 나나 나를 둘러싼 주변 인간들의 세계로 끌어 들이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만난 우리의 몸은 동산 위에 하나가 되어있었다. 원래가 한몸이었던 것처럼 마주한 살과 살 사이의 온기와 맥박은 분리된 세포를 한 덩어리로 이어주었다. 우리가 한 갈비에서 출발한 사이인지 아닌지 ‘모른다’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서로를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는 하나 더 추가된 대화 채널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언어로 통하지 않고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채널들을 열기 위해 나의 이브에게 해줄 말을 마음으로 골랐다. 그리고 나의 갈비를 그녀의 갈비 옆에 두어 본다. 눈으로 통하는 채널 말고도 생각과 마음이 지성복제와 감정복사 채널들을 통해 그녀에게 옮겨가길 바라며 말이다. 그 언어들에는 이브를 전이시킬 거짓이 없어야 했다. 나는 나의 이브를 이번에는 실패시키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브를 이번에는 죽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투명한 관계의 에덴 동산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글: 정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