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 (一場春夢)

Life is but a dream

커다란 짙은 아스팔트 사각 공간 가운데, 칠로 덫 입혀지지 않아 어느 정도 거친 기운이 남아 있는 나무 테이블 위에 그녀는 앉아 있다. 하얀 비단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칠흑 같은 머리는 정수리로 시작하여 하얗고 가녀린 어깨 선을 감싸다 모자람에 그치며 아스팔트가 빨아들인 모든 빛의 일부를 간신히 잡아 반사시키고 공간을 교란시킨다. 짙은 회색 공간의 분필냄새, 습기, 갈색 먼지를 마시며 그녀는 보라색 가녀린 숨을 내뱉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감히 가까이 다가가거나 말도 붙이지 못한 채 몇 발자국 떨어져 앉아 그녀가 나를 돌아봐 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 몇 날 며칠을 나는 잠을 자지도 무엇을 먹지도 못한 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나는 그 공간에 존재하는지 그녀는 정말로 나와 함께 있기는 한 건지 내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실존하는지 의심 마저 든다. 나는 현실의 감각의 끈을 노치지 않기 위한 무언가를 찾는다. 고개 숙인 그녀의 은은히 빛나는 머리털 사이로 아름다운 얼굴 선의 일부가 보이고 긴 눈썹의 끝이 생명의 솜털처럼 삐져 나와 있음을 발견한다. 눈으로 동아줄을 잡아보려는 듯 그녀의 눈썹이 떨리는 모습을 따라갔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꽃 같은 생명을 다했다.

나는 한동안 아픔에 시달렸다.

몇 달이 지나 오늘은 다른 여인을 만나는 날이다.

이번에도 여인은 같은 공간의 중심에 앉아 있다. 그러나 이번 여인은 이전의 그녀와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그녀는 다른 파동의 빛을 분출하며, 더 진한 분홍색 숨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 앉아 그녀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녀가 내 뱉은 분홍을 들이마시며 그녀가 발그레한 얼굴을 들고 나를 바라봐주길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기쁨을 느낄 찰나까지 아껴 내 시선과 그녀 사이에 카메라를 꼽고 지금의 케미스트리를 찍었다. 이럴 때 어울리는 카메라는 딱 한 장, 한 타임, 한번에 확인 가능한 폴라로이드뿐이다! 셔터를 누르자 마자 우리의 순간이 어땠는지 필름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절망에 빠졌다. 

나의 눈에는 분명 그녀가 나를 바라본 모습이 들어왔는데, 필름 속의 그녀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나 슬픔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다.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손을 움켜쥐고 짙푸른 주머니 이불 속에 숨겨버렸다.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숙이고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참을 정지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그녀의 향기가 짙은 분홍이 아니라 좀 다른 어떤 것이었다는 사실을 맡게 되었다.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향기의 기억을 지우고, 짙은 분홍이라는 그녀의 모습에 관한 내 마음의 추구도 지워냈다. 그렇게 철저하게 내 마음의 악력을 버리고 간신히 고개를 들어 다시 그녀를 바라볼 용기를 냈다.

그런데 그녀가 이미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다시 폴라로이드를 쥐고 그녀를 담았다. 이번 폴라로이드에는 내 눈에 들어온 그녀의 얼굴 그대로가 담겨있었다. 차라리 순백의 따스한 젊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순간이 움직이는 듯 정지되어, 1개의 2차원의 4각 공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나는 기쁨을 가누지 못하고 작업실을 뛰쳐나와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걷고 걷다가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보니 이미 그 자리에 그녀는 없고 그녀의 일생인 폴라로이드 한 장만 남아있었다. 나는 반복되는 아픔을 참으며 마음을 추스른다.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린다.

또 다른 꽃을 만날 준비를 한다.

결국 또 다른 삶의 이유를 만나게 된다.

‘사랑은 죽지 않는다(Love never dies)’

 

글: 정은 작가

Signed & Numbered Edition of 100

 

Identification and Creation

Title / 일장춘몽

Artist / Hongil Han

Classification / Photography

Object Number / 일장춘몽1~6

Work Type / Home Deco

Year of design / 2015 FW

 

Physical Descriptions

Material / Color dry-print on Acid free paper

Technique / Photomechanical print

Edition / 100

Dimensions / 60 x 90 cm

Country / Made in Korea

 

Contexts and Rights

 

Produced by STILL LIFE 

Photography by Hongil Han

written by Jungeun Jacka

Manufacturered by Photopia

Executive Produced by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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