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L'epilogue)

나는 민감한 사람이다.

나는 한식도, 양식도, 일식도, 중식도, 이탈리안 음식도, 프렌치 음식도 진심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각종 양념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향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내 코에 공격적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의 쉐프가 지휘한 최고의 요리들은 재료들이 함께 뿜어내는 향까지 계산이 되어있기에 나의 코를 즐겁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날들은 우연한 날들의 새로운 경험일 뿐, 나의 삶은 일상이라는 보통의 날들로 채워진다. 보통의 나날 들에서 그렇게 잘 지휘된 후각경험을 하기는 어렵다. 나의 일상은 아침에 화장실 환풍기에서 흘러 들어오는 옆집의 담배냄새, 보통은 잘 정리되지만 어쩌다 바쁠 때 냉장고에서 나는 단백질 상한 냄새,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지는 않지만 배수관에서 올라오는 엷은 양파냄새,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아주 살짝 상한 냄새가 나는 운동화, 지하철 옆자리에 일주일은 안 씻은 것 같은 아저씨, 그리고 아주 피곤한 퇴근 길 들른 반찬 가게에서 들렸을 때 하늘에서 새까맣게 미사일을 쏜 듯 나를 향해 돌진하는 수십가지의 반찬 냄새들(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냄새로부터 숨거나 피할 곳이 없다)로 무제한 노출 상태이다. 아주 작은 냄새도 어마어마하게 큰 자극으로 느끼는 나에게 이러한 냄새의 접근들은 무조건적 스트레스였다. 어린 아이시절부터 이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는 나를 어느 면에서는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주 남모르는 이유들로 나는 너무 큰 상처들을 받아온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상처에 대비해서 나는 언제부터 인가 마음으로부터 코를 틀어 막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의 감정을 냄새로 맡을 수 있다. 젊음의 패기가 넘치는 사람들에게서는 엷은 쇠냄새가 난다. 원숙을 지나 인생의 체념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에게서는 숨에서 분필냄새가 난다. 이 분필냄새는 오래된 목 가구 장롱에서 나는 냄새와도 유사하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신문냄새 같은 것이 맴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찌든 입냄새와 같은 것이 난다. 겸손을 가장한채 속으로 온갖 모사를 꾸미는 어르신들에게서는 비린내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몸에서는 꿀냄새가 난다. 그런데 거짓말장이들에게서는 상한 반찬 냄새 같은 것이 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에 빠진 빛나는 사람들과 가장 싫어하는 거짓말쟁이들에게서 둘 다 음식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다. 어쨌든 100명중 한 명 꼴로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있는 거짓말쟁이들의 상한 냄새에 대비하여 나는 언제부터 인가 마음으로부터 코를 틀어 막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많은 상처에 대비해서 나는 언제부터 인가 마음으로부터 코를 틀어 막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정말 조금도 주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정말 조금도 주지 않았다.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 차릴 수 있을 정도의 인간향을 나에게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를 알게 되고, 그에게 감정을 가지게 되고, 또 그도 나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도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서로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다 어른이 되어 만난 우리는 이미 인생의 많은 상처로 무수한 보호색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 스스로 풍길 수 있는 모든 인간향을 지워버린 사람 같았다. 머리는 늘 짧게 잘랐고, 방금 샤워를 마친 듯 비누냄새가 났고, 그나마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겨드랑이는 올곧게 팔짱을 껴서 보호했다.

그는 나의 관심을 가져간 채, 내가 그를 파악할 수 있는 냄새의 단서를 하나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안타까운 시간이 몇 해 지나갔다.

 

[1단계 – 흥분] 

11월 11일, 오늘 혼자 쓰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던 중간에 잠시 소파에 푹 앉아 쉬게 되었고 반년동안 연락이 없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다. 끈질기게 괴롭히던 미세먼지가 겉이고 작업실 창을 활짝 열게 되었을 때 따스하게 내 뺨을 어루만지는 햇살이 좋았고 아직 약간 쌀쌀한 바람이 귓볼에 키스한 것 같아 더 기분이 상승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모든 기분 좋은 장면과 자극들이 나를 ‘흥분’시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버렸다. 이런 것들에 흥분하는 나는 변태 인가?  

내가 이렇게 민감해진 이유는 요즘 헬스장에서 한참 나를 괴롭히고 있는 한 아저씨 때문이다. G.X. 에어로빅 시간에 바로 내 뒤로 붙어서 운동을 하더니 계속 나를 관찰하고, 심지어 어제는 내가 점프를 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흥분’하더니 바지춤을 붙잡고 괴성을 지르는 추태를 부리더라. 온갖 종류의 상처를 향해 온 마음과 코를 닫은 나에게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스트레스였다. 이런 변태라니!

온마음을 닫은 덕분에 조용했던 나의 일상에, 뭐 ‘흥분’, ‘자극’, ‘변태’ 이런 단어의 자극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여러 상처에 대해서 마음을 닫아온 나로써는 이번에도 마음을 한번 정리하고 닫아보려고 더 깊이 생각에 빠져 보다가 아래와 같은 깔끔한 도표를 창출했다. 참 정리정돈 잘한다.

일상에서 혹은 특별한 순간에 느끼는 감정적 흥분

 

→ 모두 긍정적인 것으로

   : 또다른 예술작품이나 삶의

     활력소로 환원 가능하다.

예술행위를 할 때 느끼는 창조적 흥분

예술 작품을 보고 느끼는 공감적 흥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느끼는 로맨틱 흥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며 느끼는 에로틱 흥분

어두운 사고의 골방이 만들어내는 망상적 흥분

→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 타인에게 부정적 에너지를

     전달함으로 사회악이다.

포르노를 감상하듯 오만한 자아의 일방적 흥분

 

그런데 창을 통해 맹렬히 쏟아지는 태양빛을 보다 보니 아무 계산도 없이 쏟아지는 그 순수함 앞에 내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 자신을 또 다시 보호하기 위해 이런 도표나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이 진정한 변태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그날 오후 갑자기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오늘의 그는 사뭇 달라 보였다. 빠르게 지나간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는 알 수 없다. 어떤 외적인 요인에 의해 변한 건지, 아니면 내적 요인에 의해 변화가 생긴 건지 굳이 물어볼 수 없었지만, 늘 내 앞에서 방어적으로 행동하던 그의 표정, 목소리, 말투, 행동 모든 것이 한결 부드러워진 것이 확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팔짱이 풀려 있었다! 그는 마치 나에게 파고들 틈을 주는 것처럼 팔을 편안히 벌려 나를 맞이하고 대해 주었다.말하고 손짓을 할 때 마다 유연히 움직이는 그의 육체의 틈 사이사이에서 체취가 흘러나왔다. 일반적인 상황의 나라면 익숙하지 않은 냄새의 공격을 피해 코를 틀어막았겠지만, 그때의 나는 마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지못해 죽을 운명에 있다가 힌트를 얻을 방법을 알게 된 여행자처럼 기쁜 마음으로 힌트를 받아들였다. 바로 이 미스터리한 남자의 체취를 온 코를 다 열어 파헤쳐버린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변태인지 아닌지 계산하지 않고 행동한 상으로 나는 그의 온몸의 냄새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따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향기가 매우 좋았다.

 

[2단계 – 상승]

그렇다고 일평생 자기방어에 집중하며 살아온 내가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스한 인간향의 그에게 이끌렸다는 마음에 활짝 열려 시작한 연애에 여러가지 현실적인 고려사항들이 끼어들며 내 마음을 좁아지게 했다. 더 정확히 말해 오롯이 내 사고에 잡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작가라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벌이가 충분하지 않은 나는 그가 고소득을 올리는 사업가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라는 생각을 가지지만, 그의 회사를 가득 채운 어리고 여리여리한 여직원들을 볼때마다 나는 매일 늙어가는 여자가 되고 있었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감정을 표현할 때 마다 이 참에 한번 심하게 튕겨서 그의 진심을 시험해 볼까 하는 유치한 생각이 울컥울컥 올라오기도 했다. 나는 그와의 사랑이 시작된 어느 시점부터 나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무리를 해서 쇼핑을 하고, 혹독한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수입보다 비싼 피부과 레이저 치료에 돌입했고, 조금이라도 더 있어 보이는 말투와 행동으로 나 자신을 장식했다. 또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은 어리석은 보호막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그랬던 나의 전형적인 ‘코틀어막기’ 자기 방어기제를 깨뜨린 것은 역시 다름아닌 그였다. 예쁜 말과 자기 포장만 늘어 놓는 나의 얘기를 가만히 듣던 그가 마치내 침묵을 깨고 나의 방어기제도 깨버렸다. 그가 자신의 양팔을 활짝 벌려 번쩍들어 올리는 제스츄어로 나에게 무언의 항의를 던져버린 것이다. 평소 상냥하게 움직이던 그가 처음으로 거칠게 들어올린 팔 사이로 처음 맡는 그의 향수 냄새가 나를 덮쳤다. 이것은 공격인가? 어떤 반응을 가져야 할지 또다시 계산하던 나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 것은 이번에는 그의 향수 냄새 그 자체였다. 매혹적이고 달콤하지만 숫컷의 향기가 가득한, 한마디로 나를 ‘흥분’시키는 그런 냄새였다.

온 몸의 모든 감각이 잔뜩 흥분한 나는 그를 중심에 두고 내 마음에 경쾌한 리듬을 따라 스텝을 밟으며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소녀의 치마가 움직이는 대로 바람에 춤을 추며 소년의 마음을 한껏 흐트려 놓는다. 소년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웃음이 함께 춤을 춘다. 거기 그 시간 그 자리에 나이먹은 그러나 철없고 원래 계산이라고는 모르던 내가 있었다.

 

[3단계 – 오르가즘]

오전 11시 11분, 나는 언젠가 감나무 밑을 혼자 지나간 적이 있다.

그와 잠시 소원하여 만날 수 없게 되었던 가을의 어느 날, 경주 양동마을을 혼자 여행하고 있었다.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경주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었고 또 마을 자체가 문명세계와 분리 보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다른 세상을 거닐고 있는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거기 너무나 탐스러운 감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위로부터 감이 막 익어 터져 신선한 감 주스가 몇 방울이 터져 나온 냄새를 나무 아래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너무나 신선하고 사랑스러운 향기였다. 나는 이것이 사랑하는 연인들에서 퍼져 나오는 꿀냄새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나는 순간 그 나무 아래에서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후 11시 11분, 우리가 매일 사랑을 나누는 시간.

나는 꽤나 긴 시간을 기다려 무언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어쩌면 오늘은 그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우리가 가야할 곳에 가지 못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스쳐지나 간다. 나의 손을 잡고 더 높은 곳으로 이끌고 올라가려 최선을 다하는 그의 손을 그만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그리고 다시 이내 열심히 그를 밀어내려던 지난 몇 년의 허무한 노력들과 연결선 상에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지금의 생각을 포기한다. 그리고 밀어 내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를 향해 온 코를 다 연다.

그렇게 참아 왔던 숨을 쉬어 본다.

그 순간 갑자기 가슴속으로 나비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나를 들어 우리 둘을 어디에 올려다 주었다. 바로 그 감나무 위였다. 내가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바로 그 감나무 였다. 다만 나무 아래가 아니라, 그 위로 올라와 있었다. 온 코를 다 연 그날 이후 매일 그 감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매번 올라가는 방향은 다르지만 감나무가 맞다. 우리는 매일 꿀향기를 맡는다.

 

나의 마음에 집을 일깨워 주는 그의 인간향으로

나의 관능을 요리하는 그의 향수 냄새로

매일 더 농익어 터지는 진한 사랑의 꿀향기로

오전의 나의 일상 속 설렘의 흥분을 여는 시간

오후의 사랑의 향기가 나를 몸을 흥분 시키는 시간

그리고, 내 사랑

 

이 사랑의 향기를 진심을 믿게 된 후로, 아니 이 사랑을 향해 온 마음을 다 열 수 있는 용기를 얻은 이후로 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에 역시 코를 활짝 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시간은 11: 11

 

집을 나선 후 마지막으로 참아 왔던 숨을 이제서야 쉬어 본다.

 

 

글: 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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